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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바다

미소띠움 2007. 12. 3. 16:48


'내 이름을 이슈마엘이라고 불러두자'

이것은 미국작가 허먼 멜빌의 <백경>에 나오는 아름다운 프롤로그이다.
지상생활에 권태를 느낀 한 아름다운 방랑자는 텅 빈 지갑과 텅 빈 영혼을 채우기 위해 포경선에 올라 거대한 바다로 항해를 시작한다.
배에 오르던 날 마스트에 기댄 채 그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이렇게 속삭인다.

"배에 오르면 난 결코 선장이나 손님은 되지 않을 것이다.
난 오직 한 사람의 선원이길 원할 뿐이다."

미국인들은 종종 미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이 흰 고래의 뱃속에서 나왔다고 선언한다.
민주주의란 결코 선장이나 제독이나 손님 노릇을 하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오직 생명을 지닌 한 인간이 정직하고 열정에 찬 선원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 속에서도 신비한 바다로 나가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등장한다.
멕시코 만류에 나룻배를 띄우며 고기를 낚는 이 명민한 어부는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하는 참담한 액운을 경험한다.
헤밍웨이는 이것을 스페인어로 '살라오' 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85일째가 되던 날 그는 자신을 비웃는 수많은 주민들을 남겨둔 채 다시 바다로 나간다.
사실상 그에 대한 사람들의 만류와 조롱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날 그는 마치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자줏빛 대어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돌아온다.

헤밍웨이는 이것을 스페인어로 '올레!'라고 표현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사가 투우의 목에 칼을 꽂을 때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절규로 '올레!'라고 소리친다.
중요한 것은 귀향 중에 너무도 거대해서 나룻배 뒤에 묶어둔 그 대어를 상어떼에게 모두 빼앗겨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가 귀향했을 때 남은 것이라곤 나룻배 뒤에 매달려 있는 앙상한 뼈의 흔적뿐이었다.
생의 완전한 기쁨을 의미하는 '올레'는 84일간의 고통인 '살라오'라는 이름의 역을 통해 비로소 도착할 수 있는 오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영에 만취된 인간들은 누구나 그 시작부터 행복을 기대한다.
일의 시작부터 행복만을 기대하는 한 인간은 영원히 불행한 미신가로 남게 된 것이다.

행복이란 미신도, 기적도 아니며 확률은 더욱 아니다.
행복은 언제나 84일간의 수고와 고통을 담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불란서 문학가 폴 클로텔은 고통을 싫어하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당신은 고통을 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행복도 원하지 말아라."
오늘도 우리는 이슈마엘이나 오부 산티아고처럼 삶의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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