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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외쳐라. "나는 할 수 있다"

미소띠움 2007. 12. 4. 14:02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에 통신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이 끝날 즈음 본부중대에서 수료증이 나왔다.
분명히 통신병으로 입대했는데 수료증에는 내 보직이 운전병이라 적혀 있었다.
깜짝 놀라 선임병에게 달려갔다.
운전면허증이 없다고 말했더니 군인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한다며 오히려 나에게 면박을 주었다.
운전병으로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며칠 뒤 수송교육대에 입소하자 처음부터 덤프트럭을 운전하란다.
운전 교관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했더니 교관은 나를 차 밖으로 불러 오리걸음을 시키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크게 외치게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억울해서 눈물도 났다.
덤프트럭에 오를 때마다 교관은 나에게 "나는 할 수 있다." 를 크게 외치도록 했다.
그 교관은 말이 씨가 된다며 힘든 군 생활을 극복하려면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자주 소리쳐 보라고 충고했다.
그래야 말과 몸이 하나 되어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운전병이 된 이유를 알 수 없어 오래도록 불평불만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교관과 헤어진 뒤 남은 군 생활 동안 트럭을 몰면서 운전병 생활을 했다.
휴전선 인근에서 차가 고장 나 밤새 추위를 견뎌야 했고,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죽음의 문턱에 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주문을 외며 용기를 얻었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전역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입대한 이등병이 신병 신고식을 했다.
그는 겁에 질린 듯 낯선 환경과 선임병들의 눈빛에 의기소침했다.
제대하던 날 나는 그 이등병에게 악수를 청하며 힘들 때면 산에 올라 크게 소리쳐 보라고 말해 주었다.
이제 막 군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신을 지켜줄 것임을 빨리 깨닫기 바라며 그와 작별했다.

어느 덧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유쾌하지 않았던 군 생활이었지만 단 한 가지, 자신감을 얻었다.
"말이 씨가 된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다고 노래를 불렀던 송대관은 정말 그의 노랫말처럼 쨍하며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교관도 송대관도 믿는다.
나는 매일 외치는 말이 미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친다.
"나는 할 수 있다."

자기경영원 대표 손용규님의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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