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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란 무엇인가?

미소띠움 2009. 5. 28. 11:24


성공한 인물에게서 '행운'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행운...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창조자>라는 책을 쓴 폴 존슨은 "나는 이 책에서 창조 과정에 행운이 기여한 부분, 특히 장차 창조자가 될 사람이 좌절했을때 그가 운명을 완수하도록 돕는 행운의 역할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폴 존슨과 달리 그 사람은 행운을 크게 믿었다.
여기서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패션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던 인물이 바로
'크리스티앙 디오르'(1905-1957)입니다.

1. 1920년대의 유행이 절정에 달한 1928-1929년은 현대 미술품을 팔기에 좋은 시기였고, 디오르는 미술품 중개업자로서 많은 작품들을 거래했다.
그리고 곧이어 시련이 찾아왔고, 훗날 디오는 내게
"그때의 시련에서 완전히 벗어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형이 정신병원에 갇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931년에는 대공황으로 아버지가 파산했다.
디오르가 운영하던 화랑을 포함해 화랑이란 화랑은 죄다 문을 닫았다.

2. 이 때의 재정적 위기가 없었다면 디오르는 십중팔수 평생 그렇고 그런 미술품 중개업자로 살다가 이름도 없이 세상을 떠났기 쉽다.

3. 빈털터이였던 디오르는 대담하게도 로얄 10번가 저택에 살면서 마치 성공한 사람인 양 행세했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니나 리치, 스키아팔레리, 몰리뉴, 파투같이 제법 이름 있는 의상실에 자신의 디자인을 홍보하고 다녔다.

4. 그러다가 그의 삶을 뒤바꿀 인생일대의 행운이 찾아온다.
그는 운을 믿었다. 그는 항상 주머니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물건을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만지작거렸다.
점쟁이도 자주 찾았다.
그에게 별점을 쳐 주던 점성가 들라이예 부인은 말년까지 정기적으로 찾았다.
어느 "지혜로운 여성"이 전쟁 중에 그에게 "여자들이 당신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줄 겁니다.
여자들 덕에 큰돈을 벌고 이곳저곳 여행도 많이 다닐 거예요."라고 말해 주었다 한다.

5. 그러나 그는 1946년 7월까지도 40대에 들어선 그는 여전히 무명이었고, 그때까지의 디자인 이력에도 천재적인 요소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바로 그 달에 '면화왕'이라 불린 섬유업계의 거물 마르셀 부삭을 만났다.
그에게는 '필리프 에 가스통'이라는 쓰러져 가는 의상실이 있었다.
이때 누군가가 디오르를 적임자로 추천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디오르가 그에게 말했다.

6. "나는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장인들이 일하는 작업실을 만들어 업계 최고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파리에 다시 메종을 열어 사치스러운 최고급 품질의 제품을 내놓는 겁니다.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고 위험부담도 큰 일이죠."

7. 돌이켜 보건대 극도로 수줍음을 타는 디오르의 성격을 생각하면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업가 앞에서 놀라운 발언을 한 셈이다.
부삭은 그의 의견이 마음에 들었고, 디오르에게 즉시 1000만 프랑을 투자했다.
(이 금액은 나중에 1억 프랑으로 증가했다.)
깜짝 놀란 디오르는 막판에 이 제안을 고사했다가 점쟁이의 설득으로 다시 받아들였다.

8. 디오르는 의상실 문을 열면서(1947년 2월 12일에) 가히 혁명적인 '뉴룩'을 선보임으로써
위험부담을 배가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 평등을 외치는 민주주의의 면전에 침을 뱉으며
수많은 논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부자들이 다시 부자라고 느끼도록 해 주고 싶다."
의도적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 사치와 특권은 영원히 사라졌다는 시대적 통념에 도전한 그의
첫 컬렉션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패션쇼가 되었다.

* 출처: 폴 존슨, <창조자들>, 황금가지, pp.39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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