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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야기

미소띠움 2007. 6. 7. 11:45

왜곡된 역사관은 개인과 공동체에게 가난을 물려줍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학자들은 무척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역사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들려주어야 하지요.
이영훈 교수가 쓴 <대한민국 이야기>(기파랑)를 읽으면서
'그는 보배같은 사람이다'는 생각을 다시합니다.

1. 한국인들의 역사의식은 개인적이라고보다 집단적이며, 개방적이라기보다는 폐쇄적이며, 실체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이며, 실용적이라기보다 도덕적이며, 통합적이라기보다 갈등적입니다.
그러한 역사의식으로는 극과 극을 달렸던 20세기의 한국사를 총체적으로 조화롭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극단의 시대였던 세계사를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좋은 싫든 한국사가 그 속에서 자리했던 위치를 올바로 잡아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잘못된 역사의식은 사회와 국가를 분열시키고, 이웃 나라와는 부질없는 역사전쟁만 야기할 뿐이지요.
그래서는 결국 정신문화와 국제협력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선진국 진입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취임 직후인 2003년 3.1절의 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가요. 전국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제 2건국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진 적이 있지요.
1948년 8월의 제 1건국에 무언가 심각한 하자가 있어 지금까지 문제가 많았는데, 지금부터라도 다시 건국하는 기분으로 잘 해보자는 취지였다고 기억합니다.

3. 건국사에 대한 이 같은 비판이 그 주관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의식을 선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이른바 민족의 역사의 기초 단위로 설정되고 있지만, 그 민족이란 것이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만큼 확실한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한국사를 조명하는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개별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능력입니다.
그러한 본성의 인간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또 상호 협동하면서 건설해 가는 생산과 시장과 신뢰와 법칙와 국가의 역사가 진정한 역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문명사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행 역사교과서를 그냥 두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념적이고 후진적인 역사의식으로는 선진국 진입에 요청되는 정신문화 영역에서의 도약을 기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4. 오늘날 보통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민족의식을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연 5천년 전부터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공동체였을까요.
막상 이렇게 따지고 물으면 아무도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지요. 그것이 바로 민족이 지닌 신화로서의 힘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일제의 억압을 받는 고난의 시기에 생겨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민족이란 말은 없었습니다.
민족이란 말은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지요.
연후에 최남선 선생이 1919년 3.1절 독립선언서에 그 말을 씀으로써 비로서 대중화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한국의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집단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20세기에 들어 일제하 식민지기의 일입니다. 일제의 억압을 받으면서 소멸의 위기에 봉착한 조선인들은 그들을 하나의 정치적 운명공동체로 새롭게 발견하면서 민족이란 집단의식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백두산이 영산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그 과정에서이지요.
제가 아는 한, 백두산을 신성시한 최초의 사람은 최남선 선생입니다.

5. 그렇다면, 민족주의를 비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니라 아직은 다른 어떤 이념도, 예컨대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도,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민족주의의 위력이 너무 거세기 때문입니다.
그 민족주의의 거대한 동원력이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면 그 후환은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진정 두렵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비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와 우리 자손의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을 풍요하게 만들어 감에 민족주의라는 집단적인 열정의 한계는 너무 명백합니다.
그보다는 자유와 인권과 평등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가 휠씬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6. 민족주의는 1945년 이전 구제국주의 시대의 어두운 정신사에 속한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내건 천황제의 일제와 나치즘의 독일이 주변 민족에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 주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그 민족주의의 폐해를 오늘날 우리는 천황제와 나치즘보다 휠씬 지독한 북한의 수령체제를 통해 추체험하고 있습니다.
북한 수령체제의 기본원리는 다 잘 아시는 대로 혈연원리의 민족주의입니다.
거기서는 국가와 민족이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그리고 수령은 유기체의 뇌수로서 생명 그 자체이고 당과 군대는 몸체이고
인민은 수족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정치원리이지요.
거거서는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 인권, 법치, 사유재산, 시장, 자기책임 등과 같은 문명의 기초 요소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민족주의는 그러한 수령체제에 대한 비판에 소극적입니다.
오히려 친화적인 면까지 보이기도 하지요.
왜 그럴까요. 민족주의인 이상 서로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래서 어떤 현실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7. 중고교 교과서를 보십시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의 원칙이 명확히 제시되지도 않은 채, 남북한의 정상이 서로 껴안고 있는 사진을 몇 번이나 보여주면서, 마치 통일이 임박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통일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통일입니까. 통일을 이루려면 우선 북한 수령체제가 혜체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은 교과서에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위험한 민족주의의 함정이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민족주의 비판은 여전히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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