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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은 없다

미소띠움 2007. 11. 6. 16:38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처럼 논쟁적인 인물도 드물지요.
그래서 대처 하면 알레르기를 가질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그는 영국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굴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서울대 박지향 교수가 마가렛 대처의 생애와 정치를 다룬 '중간은 없다'는 책을 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책을 시작하는 서문에 박지향 교수의 젊은 날에 대한 성찰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1984년 4월, 영국의 광부노조가 그 유명한 파업을 시작했을 때 난 런던에서 박사논문 자료수집 중에 있었다. 당시 영국 좌파 지식인들의 지대한 영형력에 있던 나는 마거릿 대처 총리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작은 액수이지만 광부노조에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고, 1년의 파업 끝에 노조가 철저히 패배했을 때 분노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철이 난 후 생각하니 그처럼 어리석은 짓도 없었다.

이 책은 내 젊은 시절의 환상에 대한 되새김이기도 하다. 대처를 몹시 미워했던 내가 이제 대처가 이룬 것을 높이 평가하는 책을 내게 된 것은 연륜이 주는 가르침 덕분이다.
젊은 시절에 믿었던 바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깨닫는 것은 기쁨이다.
젊은 시절에 믿었던 바가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것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솔직한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1. 1970년대 영국은 '유럽의 환자'였고, 통치 불가능한 나라였으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 영국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2.8%의 지속적 경제성장, 1%대의 인플레이션, 4%대의 실업률을 기록했으며, 크게 향상된 노동시장의 유연성, 250만개의 일자리 창출 등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룩랬다.
2006년에 영국은 국내총생산규모에서 독일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4위로 올라섰다.

2. 대처는 언젠가 "나는 정말 영국이 쇠퇴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라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며, 오직 자기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대처는 18세기 중엽 7년 전쟁 당시의 대 피트나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과 비견할 만하다.
1979년 영국은 비록 전쟁 중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현실은 암담했고, 그만큼 대처는 운명적으로 자신의 소명을 절감하고 있었으며, 운명의 박자에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3. 대처주의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도덕적 보수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즉, 경제적으로 통화 안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자유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며, 개인과 기업의 진취적 기상과 정신을 도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처는 정부가 시장보다 더 쉽게 실패할 수 있으며, 더 큰 재앙의 근원이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처는 자유주의자였다.

4. 그러나 대처주의의 또 다른 면이 사회적 보수주의는 엄격한 규율과 도덕률을 되살리고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소위 빅토리아시대의 가치관을 되살리는 것과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치국책을 포함하였다.

특히 대처가 강조한 도덕적 보수주의는 1945년 이후 영국 사회에 퍼진 나태, 무책임, 방종을 몰아내고,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책임감 있고, 인내하고, 자력으로 성취하는 개인들의 사회를 만들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의무감은 사라지고 끊임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경향을 종식하려면, 규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처는 그것이야말로 영국의 쇠퇴를 막고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는 절대적인 요소라고 확신했다.

5. 대처의 많은 생각이 사회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의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회주의라 할 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1945년 이후 영국 사회를 장악해 온 '케인스식 사회민주주의'를 의미했다. 대처는 정부가 이곳 저곳에 간여하는 케인스식 사회주의는 사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대처가 판단하기에 그 체제의 가장 큰 단점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사회와 국가에 기대는 '의존문화'를 부추긴 것이었다. 그녀가 영국의 경제적 회생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런 의존문화를 불식하여 '영국인들의 정신상태를 바꾸는 일'이었다.

6. 대처는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이 쇠퇴하는 것은 국민의 책임의식이 사라지고,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 사회의 탓, 국가의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처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즉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여 또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송두리째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7. 그 과정에 대처는 강한 국가의 이상을 제시했고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1977년, 대처는 노동당이 의례를 행할 때 '적기가(The Red Flag)'를 부르는 것을 비난하면서 보수당이 휘날리는 깃발은 '유니온 잭'이라고 천명했다. 이처럼 대처주의를 구성한 또 하나의 축은 애국주의였다. 그것은 포클랜드 전쟁과 같은, 어찌 보면 불필요한 전쟁을 치르게 했지만 자신감을 잃고 극도의 무기력증을 앓던 당시의 영국인들에게 필요한 처방이기도 했다.

8. 대처가 원하는 세상은 소수 극빈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는 세상이었다.

-출처: 박지향, <중간은 없다>, 기파랑, p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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