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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후진국

미소띠움 2008. 5. 22. 14:00


1975년 어느 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청년 김성이(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는 3살 먹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길이었다. 해외입양아를 양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대가로 비행깃삯 일부를 댈 수 있겠기에 한 일이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김성이가 한 일은 아이 밥 먹이고, 재우고, 우는 아이 달래는 것이었다. 피붙이도 아닌 아이에게 그밖에 특별히 해줄 일도 없었다. 아이 역시 낯선 사람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았다. 상황이 변한 것은 공항에 도착해서였다. 아이가 미국 양부모를 보자마자 김성이 청년에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한 것이다. 김성이 장관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랑 아무 인연도 없는 애였는데 나한테 확 안기니까 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어요. 애도 아는 거죠. 이제 피부나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는구나…."

이 일은 김성이 장관의 머리에 '상처'처럼 남았고, 해외입양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그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해외입양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몇 차례 썼다.

김 장관의 개인적 경험과 인식은 듣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해외입양이 '아이 장사'라는 소리를 듣는 등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준다 해서 무조건 금지할 수만도 없다는 데 있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국내에서도 입양하지도 않는 마당에 해외입양 금지만 얘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입양 통계상 2007년에 처음으로 국내입양(1,388명)이 해외입양(1,264명)을 앞섰다고는 해도 사실 이는 통계의 마술과 같은 것이다. 당시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해외입양 대상자는 무조건 5개월 동안 국내에 붙잡아 두도록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국내입양 노력을 먼저 한 뒤 그래도 입양이 되지 않으면 해외에 보내도록 한 것이다. '대기 기간' 중 국내입양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고 해외입양만 순연됐을 뿐이어서 이 자체로 국내입양이 해외입양을 앞질렀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국내입양의 추이는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01년 1,770명에서 2003년 1,562명, 2005년 1,461명으로 하향세다. 해외입양도 2001년 2,436명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기본적으로는 전체 출산율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지만, 그렇다고 미혼모 출산, 강간으로 인한 출산 등으로 발생하는 입양 대상 아이들이 함께 대폭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입양은 줄어드는 데 반해, 입양되지 않는 아이들은 늘어나는 셈이다.

결국, 국내입양을 활성화해서 해외입양을 줄이는 것이 최선책인데, 정부의 정책 아이디어는 지원금 증액이나 입양문화 개선 등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입양문제와 관련된 정부 예산은 작년의 경우 고작 18억 7700만 원에 지나지 않아 뭔가 해볼 여지가 없다.

정부는 그 돈을 쪼개 국내입양의 경우 입양알선기관에 지원금으로 작년부터 아이 한 명당 200만 원씩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입양기관들이 이 정도로는 입양 전까지 아이에게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자 올해 겨우 20만 원을 올렸을 뿐이다.

11일은 정부가 정한 '제3회 입양의 날'이다. 6·25 전쟁고아들이 비행기를 타기 시작한 지 50여 년 만에 생긴 기념일이 입양과 관련된 문제들을 좀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와플클럽 -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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