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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제국의 아침

미소띠움 2010. 11. 9. 12:06



페이스북 제국의 아침이 밝았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페이스북 가입자 숫자는 지난 2010년 2월 4억명에서 7월 5억명으로 5개월 사이에 1억명이 늘었다. 국내 돌풍도 무섭다. 페이스북의 국내 가입자 숫자는 지난 4월에는 50만명이었다. 4개월 후, 그 숫자는 160만명을 돌파했다. 당시 증가 추세는 세계 5위였고, 지금은 한국의 페이스북 가입자 숫자가 페이스북의 성장세가 정체기에 접어든 일본 페이스북 가입자 숫자를 넘어섰다.

기뻐해야 할 일인가. 소위 ‘아이폰 쇼크’가 한국에 해가 된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는 그들을 ‘해방군’으로 불렀고, 그들에게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폰은 무선망에서 유선망으로, PC에서 클라우드로 넘어가는 혁신을 막던 ‘한국형’이라는 변명의 장벽을 깼다. 그리고 ‘한국형’이라는 이름 아래 철저히 보호되던 우리 IT 경쟁력, ‘우리만의 IT 강국’의 실체도 드러났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페이스북의 등장을 반긴다. 그들은 ‘아이폰 쇼크’가 한국 IT 소프트웨어 분야의 허실을 드러냈다면, ‘페이스북 쇼크’가 한국 IT 서비스 분야의 맹점을 부각시켜주길 원한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아이폰 쇼크 이후 시행착오 끝에 갤럭시S와 갤럭시탭을 만들었듯이, 일반 이용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는 국내 제조업자와 매한가지인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변하기를 원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그들의 말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쪽의 사실’이 ‘모든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5억이라는 인터넷상 최대 이용자를 보유한 사이트의 잠재적 영향력은 ‘해방군의 타이틀’ 이상의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 나이로 이제 겨우 27살인 페이스북의 젊은 CEO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 중퇴 선배인 MS의 빌 게이츠를 닮았다. 그들이 닮은 것은 빼어난 학력뿐이 아니다. 더 닮은 것은 그들의 야심이다. 과거, 빌 게이츠는 ‘PC 제국’을 꿈꿨다. 컴퓨팅이 아직 기업의 것이었을 때, 그는 모든 사무실, 모든 가정에 ‘개인용 컴퓨터’가 설치되는 것을 꿈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꿈꾼 것은 사람들이 그 ‘PC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은 ‘원하지 않아도 원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빌 게이츠는 ‘황제의 이름’으로 MS의 도스와 윈도우 운영체제, 그 플랫폼을 장악한 자의 영향력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주커버그도 마찬가지다. 주커버그는 그의 회사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소셜 웹 유틸리티’라고 부른다. ‘네트워크’ 대신에 ‘웹’이라 부르는 것은 페이스북의 일촌놀이가 인맥관리를 넘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페이스북이 파악한 관계 정보인 ‘소셜 그래프’(social graph)는 이용자 분석에 대한 새로운 틀을 제공함으로써 상거래에 새로운 문을 연다. 코드명 ‘페이스북 경제’(f-commerce)의 창조다. ‘서비스’ 대신에 ‘유틸리티’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의미심장하다. 서비스는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지만, 유틸리티는 원하지 않아도 써야만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기, 수도, 우편 등의 대열에 페이스북이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한때 MS의 빌 게이츠가 운영체제를, PC 생태계를 통치했듯이 페이스북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네 생태계를 장악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그러나 온라인 황제의 등장은 오프라인 국가의 등장과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초국적 성격을 띤 인터넷 서비스와 국경 내 주권을 가진 국가는 상호 충돌하는 이해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개척재단(EFF) 창립자인 존 페리 발로우 같은 자유주의자가 1996년 2월8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사이버 세상은 우리들 것이니 오프라인 권력은 방관하라는 ‘사이버 공간 독립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인터넷을 규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인터넷을 규제할 만한 가치와 필요성, 그리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한 예로, 1969년 미국 국방부 후원에 의해 인터넷 전신인 알파넷(ARPAnet)에 국가가 어떻게 간여해 왔는 지 떠올려 보자. 알파넷 기능의 핵심 중 하나는 도메인네임 서버(DNS)다. 기계는 네트워크 속 사이트 위치를 숫자로 구성된 IP주소로 파악할 수 있지만, 사람은 문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www.bloter.net’과 같은 주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일명 ‘도메인’이고, 그것을 관리하던 사람은 인터넷의 숨은 아버지인 존 포스텔이었다. 포스텔은 1992년까지 정부 계약으로 개인적으로 ‘선착순 방식’으로 도메인을 관리했고, 자기 컴퓨터를 도메인이 정리된 ‘루트 서버’(root server)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2년 포스텔이 그 동안 성실히 수행하던 단순 작업에 흥미를 잃자 미국 정부는 포스텔이 하던 일을 민간 기업으로 이양시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도메인의 상업화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며, ICANN(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이라는 국제기구가 탄생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정부가 인터넷에 개입할 수 있다는,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때를 기다릴 뿐이다.

더 분명한 예로, PC시대의 제국 MS도 정부의 견제를 받았다. 사건의 발달은 PC 황제가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력을 직감하면서부터였다. 이윤 창출이 존재의 목적인 회사로서 MS가 원했던 것은 MS 같은 기업이 시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MS가 생각하기에 PC 시장의 영향력을 인터넷 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를 합체하는 ‘번들링’이다. 이 전략 덕분에 MS는 넷스케이프보다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들고 오늘날의 ‘모바일 시장’ 내지 ‘소셜 네트워크 시장’인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보였다. 1998년부터 촉발된 미국 법무부, 연방거래위원회(FTC) 그리고 다수 정부와 MS간에 벌어진 지리한 ‘반독점’ 법정 공방의 시작이었다.

그같은 MS의 반독점 법정 공방이 해당 산업과 소비자에게 미친 실효성 평가는 잠시 접어두자. 페이스북 역시 5억이란 이용자 수와 압도적 소셜 네트워크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만큼 ‘독점’ 시비에 몰릴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그들이 같은 ‘견제’를 받기는 어렵다. 2010년 9월9일 하버드 버크만센터에서 가진 대담에서 사이버 법률 분야 전문가인 로렌스 레식과 조나단 지트레인 하버드 교수는, MS의 반독점 견제는 운영체제와 웹브라우저의 ‘분리’를 통해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었으나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관계’를 ‘분리’시켜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같은 해결책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물론, ‘어렵다’고 해서 국가가 포기한 것은 아니다. 2010년 11월4일 EU는 1995년에 제정한 프라이버시 법안의 재정비안을 발표했다. 관련 내용을 보면 이 법안에서는 최근 부각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위해성을 염려해 국가의 허락 범위를 넘어선 개인정보 공유에 대해 규제를 정의한다. 프랑스는 2000년, 당시 인터넷 황제였던 야후에게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신나치물품 거래를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려 인터넷 규제의 효시를 알린 바 있다. 과거 전력을 생각할 때, ‘야후’가 아닌 ‘페이스북’이라고 해서, 정부 규제의 예외가 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페이스북은 이용자들이 개인정보 안전을 불안해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국가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들고 공권력을 행사할 규제의 동기가 충분히 있다.

국가가 인터넷 산업의 경쟁 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용자수 면에서 아시아 인터넷 시장의 절반인 중국은 구글 대신에 바이두(百度), 페이스북 대신에 시아오네이망(校内网)이라는 카피캣 웹 2.0 서비스를 쓴다. 이러한 중국판 서비스가 글로벌 서비스 대신에 중국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데에는 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넘어서 ‘중국 정부의 역할’이 있다. 구글은 2006년 진입했던 중국 시장을 2010년 초 철수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중국에서 접근 금지 상태다. 물론 프록시 서버 등을 통해 이들 서비스에 접속하는 중국 인터넷 이용자들도 있지만, 소수다. 중국 정부는 아무리 활발한 소통과 혁신이 일어난다해도 미국 정부의 영향 아래 있는 구글과 페이스북이라는 외국 기업보다는 좀 더 규제가 용이한 자국 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체제 유지를 위해 언론과 사상의 자유 통제 필요가 막대한 중국 정부측으로서는 더더욱 그에 대한 유인 동기가 강하다.

그러므로 페이스북 제국의 아침이 곧 사이버 공간에서 지역 정부의 영향력이 약화된다거나, 지역형 서비스가 글로벌 디지털 문화와 같은 실체 없는 그림자에 의해 와해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국가와 정부는, 그리고 그들의 보호와 지지의 테두리 안에 있는 지역형 서비스들은 존속할 것이다.

페이스북이 MS가 했던 것처럼 다시 ‘제국’이 되고자 한다면, ‘서비스’를 넘어서 ‘유틸리티’가 되고자 한다면, 가장 큰 적은 전통적 유틸리티의 관리자인 ‘국가’일 수 있다. 아마도 이용자수 측면에서 페이스북을 뛰어넘는 또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대신에 ‘차이나 와이드 웹’(China Wide Web)을 달성한 중국일 지도 모른다. ‘개인정보’나 ‘국가안보’처럼 국가의 책임과 존재를 위협하는 여지가 남아있는 한, 국가의 인터넷에 대한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영향력은 역대 최대의 인터넷 사이트인 페이스북 ‘제국’의 등장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페이스북 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유는, ‘페이스북 제국의 아침’에 ‘글로벌 서비스’와 ‘로컬 서비스’를 가르는 데에는 기업 자체 경쟁력이나 이용자 필요성만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동시에 기업의 세기와 글로벌 인터넷 환경 속에서도 지역 국가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고, 그들의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보면 페이스북의 부상, 새로운 디지털 제국의 등장은 기업과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과거 초국가적인 교회와 지역 정부와의 갈등 양상의 재현으로, 디지털 권력의 아날로그 권력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다. 그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출처: 블로터 닷넷 by 비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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