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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감동적인 이야기

미소띠움 2011. 7. 19. 09:25

미국의 한 검사님이 쓴 책을 읽다가 큰 딸의 장애에 관한 부분이 등장합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1. 첫 아이의 탄생만큼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는 일이 또 있을까?
켈시가 태어났을 때 나는 스물다섯 살 먹은 로스쿨 3학년생이었고, 따라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에는 여러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다.
새끼 금붕어 한 마리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나이였으니까 말이다.
또한 당시 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직전이었고,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삶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2. 그러나 일이 순조롭지 않을 거라는 경고가 계속되었다.
출산하기 몇 달 전, 여름방학을 맞아 나는 집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하혈을 했다.
유산을 염려했지만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임신한 지 불과 32주 만에 양수가 터졌다, 아기를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미쉘은 한 달 내내 병원 침대에 입원해 있으면서 출산을 고집했다.
당시 젊은 부부였던 우리는 겁에 질렀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도 잡지 못했다.

3. 의사가 출산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고, 우리는 1992년 11월 20일에 아기를 낳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오전 8시 30분에 유도 분만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까지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4. 어렵게 태어난 켈시는 스스로 숨을 쉬지 못했다.
간호사는 분만실 벽에 걸린 생명 유지 장치를 이용해 아기에게 산소를 공급했다. 난산 중에 투입된 약물 때문에 미쉘은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의사의 다급한 지시에 따라 분만실 직원들은 켈시를 분만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5. 너무나 급한 나머지 그들은 산소마스크를 채 떼어내지도 않고 침대차를 움직였다.
아기의 얼굴에서 산소마스크가 툭 벗겨졌고
그제야 나는 상황의 심각성과 절박함을 확실히 인식했다.
그 장면은 뇌리에 깊이 박혀 그 후로도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아내는 혼수상태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 곁에 앉아 30분 동안 아기의 생사를 염려했다.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30분이었다.

6. 간호사 출신인 경험많은 어머니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신체적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정신적으로만 온전하다면."
그 후 몇달 동안 우리는 돌아가며 병원에서 줄곧 밤을 세웠다.
우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들을 의사에게 해댔다.

7. 성탄절을 힘들게 보낸 다음 달에 마침내 소아과 약속이 잡혔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의사를 켈시를 간단히 진찰한 후 우리 부부를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켈시에게 희귀한 유전자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염색체 일부가 없어요. 너무나 드문 질병이라 아직 적합한 병명이 붙여지지 않은 상태고요. 의학 기록상 지금껏 단 17명만이 이 병에 걸렸고요. 이 문제를 지닌 아기들은 대개 생후 일년 안에 사망합니다.
살아난다 해도 발달이 대단히 느릴 겁니다. 죽을 때까지 한 살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갖추지는 못할 거예요."

8. 나는 진찰실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붐비는 거리 위로 차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봐! 근데 난 지금 고작 일 년밖에 살지 못할 아기와 함꼐 여기 앉아 있어.
이건 정말이지 불공평해.' 그 순간은 인생에서 스스로를 가엾다고 느낀 유일한 시간이었다.

몇 번의 급박한 위기는 있었지만 켈시는 살아남았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아 우리는 이사를 했다.

9. 그즈음 켈시는 간질 증세를 보였고, 친구들이 놀러온 어느날 저녁에 발작을 일으켰다.
최종 변호사 시험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발작 억제제 중 하나가 부작용을 일으켰데요. 그래서 혈액응고에 문제가 생겼어요.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켈시가 호흡을 멈추려 할 때 의사가 최후 수단을 사용해보겠다는데... 그것도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장담하지 못한대요."

10. 그후 켈시는 16년간을 더 살아오고 있다.
건강상의 위기도 있었고, 의사의 예측대로 딸아이 지능은 한 살 아기의 수준에서 멈췄다.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고 위로 곧장 통하는 관을 통해서만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켈시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딸이며, 무사히 살아있다.

11. 평정이란 마음의 상태다.
위기를 겪으면서 아내와 나는 조금씩 강해졌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이미 겪어온 일들을 떠올렸다.
낙심하는 마음이 들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으며 또한 얼마나 더 힘들 뻔했는디 기억했다.
말하자면 켈시는 나를 단단하게 보호해주는 갑옷 같은 존재였다.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둘째 아기를 잃었을 때도 나는 이 시기 또한 결국 넘길 거란 사실을 알았다.
켈시 덕분에 비로소 나는 평정심을 지니는 법을 배웠다.

-출처: 캐머런 건, , 21세기북스, pp.19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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