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띠움
랜스 암스트롱, Live Strong 본문
2003년, 3,500Km의 거리를 20구간으로 나누어 23일간 진행되는 죽음의 레이스가 마지막 결승점을 향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
뜨거운 태양은 전신을 짓눌렀고 심장은 이내 터질 듯했다.
중도 탈락자가 속출했고 세 명의 레이서가 목숨을 잃었다.
남은 거리는 9.5Km, 선두는 예상대로 1999년부터 내리 4연패를 기록 중인 랜스 암스트롱.
천재지변이 없는 한 5연패는 기정사실이었다.
바로 그때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한다.
한 소년의 가방 끈에 암스트롱의 사이클 핸들이 걸려 넘어져 버린 것.
사이클 황제의 비운 앞에 사람들도 숨이 멎는 듯했다.
시선은 곧 암스트롱의 뒤를 쫓던 얀 울리히에게 꽂혔다.
암스트롱의 철벽 앞에서 늘 좌절했던 만년 2인자 얀 울리히, 놀랍게도 그는 사이클을 멈추고 암스트롱이 일어서길 기다렸다.
결과는 41초차, 암스트롱의 우승이었다. 게다가 신은 이 놀라운 아름다움을 두 번 일으키는 기적을 연출했으니, 이듬해에는 얀 울리히가 넘어졌고 암스트롱이 기다렸다.
렌스 암스트롱의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는 세계 스포츠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기록 중 하나로 꼽힌다.
이때 '가장 극적인 기록'의 배경은 단연 그의 고환암 병력이었다.
불우하고 폭력적인 유년기를 보내고 독선적인 엘리트 선수로 성장한 그에게 암 선고는 '신의 장난'처럼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살 수만 있다면 사이클을 못 타도 좋고 폐품 수집이라도 하겠다며 기도했다.
생사의 기로에서 선수 생명 운운하는 건 사치였다.
한쪽 고환을 떼어 냈고, 암세포가 퍼진 뇌의 일부를 도려냈다.
헌데 암이 바꿔 놓은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었으니, 천하의 게으름뱅이 엘리트가 암을 공부하고, 부끄러움과 겸손을 배우고 사랑을 체득하게 되었다.
3년간의 암 투병 후 1999년 투르 드 프랑스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사람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의지의 소유자인지를 증명했다.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끝으로 은퇴한 그는 '랜스 암스트롱 재단'을 설립해 암 환자들을 돕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소유자'라는 말보다 '암을 극복한 사람'이었다.
'Live Strong'이라고 새겨진 노란색 고무 팔찌, 그리고 그의 오랜 벗 사이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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