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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정조'의 교훈

미소띠움 2007. 11. 26. 14:51


이한우 기자의 조선실록에 바탕을 둔 군주열전 6권의 마지막 책은 '정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정조를 두고 조선조의 뛰어난 왕 중의 한명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이한우 기자의 새 책은 완전히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리더십에 대한 교훈과 아울러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정조는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지요.
50년 이상 집권한 할아버지 영조를 이어서 조선의 22대 왕에 오른 인물이지요. 규장각을 세웠고 정약용 형제들도 정도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이 순조입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보통 사람도 들어둘 만한 교훈을 듬뿍 담고 있습니다.

1. '영정조 르네상스'라는 정체불명의 역사평가에 의해 '개혁의 화신'인 양 과도하게 높이 평가되고 있는 정조 해석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결코 개인적인 피해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릴 때(11세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함)의 극한 체험은 결국 정조를 '공'보다는 '사'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부성애의 결핍, 그러면서도, 아니 그 때문인지 우유부단했다.

2. 정조는 비극적 성장과정으로 인해 포용의 정치보다는 불신의 정치로 나아갔다.
믿음의 폭이 좁았다. 왕권 강화를 통해 나아가려는 세상이 관리들의 세상이 아니라 백성의 세상이었다면 그 노력은 긍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숙종의 경우가 그랬다.
그러나 정조의 노력은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로지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 추숭을 향한 것이었다. 장용영(1785년 정조의 신변 보호를 주 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국왕 호위군대) 설치가 그랬고 화성 신도시 건설이 그랬다. 국왕이 이런 문제에 집착하는 한 백성은 도탄에 빠지기 마련이다.

3. 정조 집권과 함께 10년 이상 계속된 역모와 반란은 단순한 권력층 내의 파워게임이 아니었다. 백성의 한 무리는 천주학에 마음을 빼앗겼고 또 한 무리는 <정감록> 등과 같은 전통적인 예언사상에 기대려 했다.
나라, 임금, 조정에 대해 더 이상의 희망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식이 뛰어났다고 해서 그 임금을 상군이라 한다면 그것은 역사인식의 기본을 잃은 태도라 할 수 있다.
백성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겼다면 개인적인 문제로 24년이라는 짧지 않은 집권 기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4. 정조라는 인물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성군이 이룩한 선정의 치적이 아니라 '퇴계 율곡을 뛰어넘는 학식을 갖춘 인물이 정치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는 역설적 사실이다.
사실 이 점은 대단히 곤혹스럽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대학>의 핵심 가르침에 회의를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조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이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하게 된 것이 나름의 망외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5. 과거에는 수신하면 제가 되고 제가하면 치국되고 치국하면 평천하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조로 인해 해석방식이 바뀌었다.
수신해도 제가에 실패할 수 있고 제가 해도 치국에 실패할 수 있으며 치국해도 평천하에 실패할 수 있다는 때늦은 깨달음이다.
생각해 보니 수신의 원리, 제가의 원리, 치국의 원리, 평천하의 원리는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앞의 것은 뒤의 것을 위한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6. 정조는 분명 수신이나 제가의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다. 특히 자기 억제력과 직결되는 수신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자기수양에 피나는 노력을 다했다.
제가 또한 하나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도 치국에서 정조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아마추어리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람을 보는 눈에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고 선공후사라는 리더십을 몸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머리로 정치를 하려다 보니 마음으로 다스려야 하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했다.
아랫사람을 잡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다.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정조 때 신하들 사이에 면종복배(겉으로 따르는 듯하면서 속으론 배반하는 것)가 만연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정조의 책임이 크다.

-이한우, <정조>, 해냄출판사, p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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