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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띠움 2008. 1. 25. 09:59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글 가운데서 몇 대목을 보내드립니다.
그녀는 평생동안 '죽음'의 문제를 연구해 온 사람입니다.
늘 분주하게 살아가면서 이따금 멈추어 서는 행위는 순간과 하루 그리고 생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도와줍니다. 죽음을 직시하는 것은 곧바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입니다.

1.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지니지 못한 소중한 재산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것은 바로 선택의 자유다.
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한 줌의 먼지가 아니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이 만든 아름다운 눈송이와도 같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이 우주에 똑같은 눈송이는 하나도 없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지니고 태어났고 살아있는 동안 많은 업적을 이루었건 그렇지 않건 결국엔 누구나 죽는다.
지상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가 매일, 매 순간, 모든 기회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택은 항상 우리에게 있다.

처음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누구든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외면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자기 연민이나 분노, 고통에 허우적거리면서 너무 긴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반면 누군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비밀로 간직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고, 우리와 시련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나누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모든 나눔은 그것이 서로에게 보탬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2. 오랜 세월 동안 죽어가는 어른들과 어린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떠나고 난 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오래 남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자 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받는 것이라는 격언이야말로 수십 년에 걸쳐 내가 깨달은 교훈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인 것 같다.

3. 아무런 준비없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경우에는 못다한 일들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야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가장 큰 고통이다.

4. 루이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우리는 다른 용기 있는 환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점들을 루이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루이스에게는 남아 있는 삶이 몇 년인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있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었고, 살아 있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죽음이 결코 나이 든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환자들이 어떤 병에 걸려 죽느냐 하는 문제는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죠.

5. 70세가 되던 해에 쓴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를 이렇게 작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고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 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출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이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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