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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을 달리는 맛

미소띠움 2008. 12. 12. 11:11


출근길에 '스키장 개장!' 광고를 보고 바야흐로 스키의 계절이 왔음을 알았습니다.
갸울엔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따뜻한 호빵이나 군고구마를 먹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 여기던 제게 눈소식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몇 해 전, 처음 스키를 배우던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옵니다. 겨울잠을 즐기던 저를 스키장에 끌고 간 친구는 스키를 타기 전에 딱 두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넘어질 때는 다리를 모으고 옆으로 툭~ 넘어지고, 스키를 탈 때는 다리가 A자가 되로독 하고,"
친구는 이것만 알면 금세 스키를 잘 탈 수 있을 것처럼 안심을 시켜 놓고 저를 리프트에 태웠습니다.
초급 코스 리프트에서 내려 아래를 바라보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쌩쌩 달리는 사람들에게 부딪칠까 싶어 가슴이 콩알만 해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친구를 원망할 때는 산 중턱에 저 혼자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발견한 후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살 아이 걸음 배우듯 엉거주춤 기어서 초급 코스 토입까지 내려오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요.

스키를 타면서 가장 큰 난관은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키화가 무겁고 스키 판이 길다보니 일단 한번 넘어지면 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몇 번 넘어졌다가 일어나는데 기운을 뺏더니 나중에는 대자로 누워있거나 앉아서 미끄럼틀을 타듯이 내려오면서 "이게 무슨 망신이람. 힘들어 죽겠네. 그만 내려가자" 했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포기하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일어났지요.
적어도 50여 번을 일어나고 넘어지고를 반복했습니다. 제대로 넘어지고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무릎이 깨져 피가 났지만 뭐든 시작할 때는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들자 작은 오기도 생기더군요. 수십 번을 넘어지면서 초급을 내려온 후에는 만류하는 친구를 뿌리치고 중급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40여분 만에 한 열 번쯤 넘어져서 내려왔습니다.
"오호~ 감 잡았어!" 라는 자신감이 생기자 이제는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벗어지고 서서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나무와 푸른 하늘 그리고 이마에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설원을 달리는 그 기분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었습니다. 타면서 속도가 붙자 마치 하늘을 나는 듯 묘한 쾌감까지 느껴졌습니다.

어렵게 스키를 배우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자세를 조금은 몸에 익힌 듯 합니다.
나는 이제 시작하는데 벌써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들 앞에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창피하고 아픈 과정을 겪는 일, 전학 와서 낯선 교실에 혼자 들어갈 때의 마음이 그렇고, 직장에서 새롭게 일을 배울때도요. 하지만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일어나야 중급 고급으로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가르는 여유를 누릴 수 있겠지요?

스키장을 다녀온 후 삼일정도는 온몸이 뻐근했지만 그래도 설원의 자유로움을 알고 난 후에는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일년 만에 스키를 타면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을까요? 괜찮습니다. 몇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요.
설원을 달리는 제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아! 이 가슴 두근거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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