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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역사적 교훈

미소띠움 2009. 10. 17. 15:06


15세기 이후 유럽강국의 해상팽창을 다룬 역사학자는 현재의 '세계화'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역사학자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화 시대의 실상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긴 호흡으로 바라본 '세계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대사는 곧 세계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홀로 고립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의 의식주, 언어와 심성, 자연 환경까지 포함해서 우리를 구성하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근대 세계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근대 세계는 이전 시대에 형성된 많은 것들이 뒤섞이면서 새롭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가 나날이 살아가는 기본 틀은
여전히 한국, 일본, 중국 같은 국가 혹은 기껏해야 동아시아와 같은 지역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2. '세계'라는 것이 구체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정말로 완벽하게 통합되어 전 지구적으로 사람들의 삶과
의식이 완전회 동질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세계'라고 지칭되는 외부 세계의 힘이 강하게 미친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지역'의 사정과
필요에 의해 걸러져서 수용되기 십상이다.

3. 세계와 지역, 그리고 세계화와 지역화, 이 두 가지 차원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경제'는 특히 세계화의 힘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곧 시장의 세계적인 확대를 의미한다.
시간이 갈수록 상품, 노동, 자본 등의 요소들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어 갔다.
시장의 힘은 강력한 용해력으로 작용하여 대개 그 어떤 장애도 넘어가곤 한다.

4. 예컨대 인도의 면직물은 뛰어난 품질과 싼 가격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의 이해 당사자들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유럽시장을 석권했으나,
다음 시대에는 산업헉명의 결과 오히려 영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싼 면직물이
인도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귀결이 결국 오늘날 전 지구적인 시장 네트워크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5.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경제' 혹은 '시장'이 정말로 무제한적인 힘을
행사하지는 못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이 행위일 뿐 아니라 문화적 해석의 행위이기도 하다.
코코아를 예를 들어보자.
원래 아메리카에서 코코아는 신들과 왕에게 바쳐진 음식이거나 전쟁에
나가는 전사들만이 맛 볼 수 있는 고귀한 물품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유럽에 전해진 후에는 주로 카톨릭 지역의 귀족들이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가 오늘날에는 주로 여성들이나 어린이들이 즐기는 식품이 되었다.
'문화'는 이런 식으로 '경제'의 힘을 변형 혹은 왜곡시키고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경제적인 요소들이 세계화의 주축이 되는 요소로서
세계 모든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한편
문화적인 요소들이 지역 차원에서 그런 흐름을 저지하기도 하고 변형시키는 역할을 한다.

6. 그러나 이렇게만 이야기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문화 역시 불변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우리 사회는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어서 대략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생활 패턴, 사고방식, 감성 등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게 된다.
그런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분명 경제적 발전임에 틀림없다.
경제적 여건의 변화는 곧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경제가 문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7. 게다가 이제는 문화 역시 반드시 지역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그 자체가 세계화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한 지역의 문화 요소들이 다른 지역으로 보급되는 현상 역시 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8. 그러므로 근대 세계에서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역적인 요소가 세계로 퍼지기도 하고,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지역적인 요소가 진화하기도 한다.
우리는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세계적인 차원과 지역적, 지방적 차원을
중층적으로 경험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9. 무엇보다 이런 현상이 이미 수백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임을 주목하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우리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환경마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근대 이후 해양 팽창 과정에서 변형되고 새롭게 적응한 결과이다.

10. 세계화(globalization)는 우리가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나머지 전 세계의
움직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우리가 세계 속에 있고 세계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주경철,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출판부, pp.362-363,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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