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띠움

'게릴라 집단' 이어야 한다 본문

Diary/Diary

'게릴라 집단' 이어야 한다

미소띠움 2010. 1. 9. 17:49


연휴 때 '건축가 안도 다다오' 씨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1941년 생으로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선 인물인데,
그의 조직관과 경영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뿌리깊은 인생을 만들어 왔고 그렇게 살고 있는 분입니다.

#1. 사람들은 조각가나 화가 같은 아티스트와 건축가의 차이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나는 그 커다란 차이점 가운데 하나로, 건축가가 제대로 활동하자면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조직을 확보한 개인'이 되어야 비로소 인정을 받고 신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있다.

#2. 조직을 꾸리게 되면 당연히 사회적, 경제적 제약이 따른다.
그런 제약 속에서 조직을 얼마난 건강하게 유지해 가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예술적 재능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3. 조직이란 굴러가는 대로 놔두면 비대해지게 마련이라 나중에 문득 돌아보면
나를 위해 만든 조직에 나 자신이 휘둘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에 매몰되면 그 건축가는 이미 끝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무슨 까닭인지 건축 세계에서는 그다지 화제로 삼지 않는다.

#4. 나 나름대로의 조직관을 갖게 된 것은 꼭 10년차가 되어 스태프가 10명쯤 되었을 때이다.
설계사무소는 '게릴라 집단'이여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자세였다.

#5. 우리는 지휘관 한 사람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다.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게릴라 집단'이다.

#6. 나는 '도미시아 주택'을 비롯해 초기에 지은 작은 도시형 소주택을,
과밀화에 허덕이는 각박한 도시 환경에서도 개개인이 강인하게 뿌리내리고 산다는
의미를 담아 '도시게릴라의 주거'라고 이름 지었다.
내가 설계하는 건축뿐만 아니라 만드는 당사자인 우리 역시 게릴라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7. 하지만 일본이라는 평화로운 사회 환경에서 자란 젊은 스태프들에게 다짜고짜 게릴라가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실 사회 조직 속에서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8. 먼저 생각한 것은 업무 전반에 전적으로 책임지는 담당자를 정하고, 모든 과정을 나와 담당자가
1대1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업무가 5건이면 5명, 10건이면 10명의 담당자가 있게 된다.
그렇게 하면 보스가 모든 현장과 직결되므로 중간관리직은 전혀 필요 없다.

#9. 사무소가 내 개인사무소인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스태프 사이에 인식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전달하고 공유하느냐 하는 소통의 문제가 열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은 모든 일을 단순 명쾌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모호한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이것이 내 천성인지도 모른다.

#10. 긴장감이 없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언젠가는 독립하여 자기 사무소를 차릴
스태프의 경력을 생각하더라도 내 사무소에서 얼마나 진지하고 현장감 있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그의 경험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늘 엄격한 자세로 스태프를 대했다.
그것이'공포감으로 교육하다'의 참뜻이기도 하다.

11. 설계사무소라는 작은 조직인 만큼 젊은이들을 나쁜 의미의 월급쟁이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된듯이, 즉, '누군가 하겠지', '상사가 책임지겠지' 하며
남한테 기대거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는 태도는 허용할 수 없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순서를 정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 전진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책임을 완수하겠다고 각오하는, 그런 강력한 개인들의 집단이기를 바란다.


-출처: 안도 다다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pp.17-3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