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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겪는 삶의 위기

미소띠움 2008. 8. 18. 14:17


마틴 셀리그만의 명저, <학습된 낙관주의>를 읽다가 인상적인 사례를 한 가지 발견하였습니다. 저자가 가족사회학 분야의 세계적 귄위자인 글렌 엘더 박사의 강연을 들었을 때 경험한 일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에 부모가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이를 슬기롭게 당당하게 헤쳐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1.
1981년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나는 가족사회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글렌 엘더의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은 엄청난 역경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엘더는 자신이 학자가 된 뒤로 평생을 바쳐 수행하고 있는 흥미진진한 연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두 세대 전에, 다시 말해 1930년대의 경제 대공항이 발행하기도 전에 글렌의 선임연구자에 해당하는 몇몇 선구적 과학자들이 개인의 성장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연구는 그뒤 거의 60년 동안 계속되었다.

2.
이 연구에서는 처음에 캘리포니아 주의 두 도시인 버클리와 오클랜드의 아동집단을 대상으로 면접과 철저한 검사를 통해 이들이 어떤 심리적 강점과 약점을 지녔는지 조사됐다. 이때 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현재 칠십 대 또는 팔십 대의 노인이 되었는데 그동안 이 평생발달에 관한 획기적 연구에 계속 협조해왔다.
게다가 이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녀와 나아가 손자들까지 이 연구에 동참했다.

3.
글렌은 이들 가운데 누가 경제 대공항을 무사히 넘겼으며 누가 다시 일어서지 못했는지 이야기했다.
재산을 모두 잃었던 중류층의 소녀들은 그들이 중년 초기에 접어들었을 때 심리적 건강을 회복하였고 그 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노년기를 보냈다.
반면에 1930년대에 비슷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하류층의 소녀들은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지 못했다. 이들은 중년 말기에 좌절을 경험하였고 노년기에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비극적인 상태에 빠졌다.
이런 일들의 원인에 관하여 글렌은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4.
"저는 건강하게 노년기를 보낸 여성들이 어릴 적에 대공항을 겪으면서 역경이란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가족들은 대부분 1930년대 말기나 1940년대 초기에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섰지요.
덕분에 낙관주의를 배우게 된 것이고요.
경제적 위기를 이겨내면서 나쁜 일은 일시적이고 특수하며 외적인 것으로 보는 언어습관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노년기에 설령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다시 좋은 친구를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낙관적인 견해가... 건강 또는 노화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5.
"하지만 하류층 소녀들은 달랐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가족들은 대공항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대공항 시기뿐 아니라 그 이전이나 후에도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비관주의를 배우게 된 것이지요.
어려움이 닥치면 그런 힘든 시기가 계속된다는 것을 배운 이들은 절망적인 언어습관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훗날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 이들은 '이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냉혹한 현실 속에서 체득한 비관주의가 나중에 새로운 위기상황에서도 작용하여 건강이나 성공 또는 주관적인 행복감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지요."

6.
글렌은 강연을 끝맺으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물론 이것은 모두 제 추측입니다. 50년 전에는 아무도 언어습관이라는 것에 주목하지 않았지요. 때문에 그런 것을 측정한 적도 없고요.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1930년으로 돌아가 제 추측이 과연 옳은지 확인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럴 수가 없으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타임머신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라는 글렌의 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글렌이 자던 방의 문을 두드렸다.
"일어나시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타임머신을 갖고 있어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공동연구가 시작됩니다.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진로 기록들을 낱낱이 추적하는 연구가 시작됩니디.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7.
첫째, 부모가, 특히 엄마가 일상에 관하여 자녀 앞에서 내뱉는 인과적 분석의 형태였다.
부모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면 자녀 또한 그렇게 볼 것이다.
둘째, 자녀가 잘못했을 때 듣는 꾸지람의 형태였다. 불변하고 보편적인 형태의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셋째, 어릴 적에 겪는 상실과 충격이었다.
상실과 충격이 완화되는 경험을 한 아이는 나쁜 일이 일시적이며 극복될 수 있다는 이론을 발전시킬 것이다.
그러나 상실과 충격이 실제로 불변하고 보편적인 것이었다면 그런 경험을 한 아이의 마음에는 절망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릴 것이다.

-출처: 마틴 셀리그만, <학습된 낙관주의>, 21세기북스, pp.22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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