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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소리를 듣는 일

미소띠움 2009. 5. 6. 14:52


어린이날이 85번째 생일을 맞았다.
첫 어린이날의 주인공 세대는 대부분 격변하는 세상을 살다가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 수많은 이들이 유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장년과 노년의 고개를 넘었다. 자장면 한 그릇이 큰 선물이었고, 동네를 순회하는 스프링말 매달린 리어카 타는 것이 놀이동산 가는 것만큼 즐거웠던 1960년대. 갖고 싶은 것이 있어 엄마, 아빠를 졸라봐도 정작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살기 바빴던 부모들은 한 두명도 아닌 아이들의 소망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었다.

고가의 게임기나 디지털기기 등이 어린이날 선물이 된 지금, 부모들은 아이에게 필요한 공부, 아이가 가지고 싶어하는 물건을 채워주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 재산을 쏟아붓는다. 성공적인 인생계획표를 작성해 주고. 목표를 향해 아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의지는 가히 헌신적이다. 그런데 그 의지 속에 아이의 소망이 얼마만큼 포함되어 있을 지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올해는 어린이의 권리를 총체적으로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채택 20주년을 맞은 해이다. 이 협약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191개국의 비준을 받아 가장 많은 나라의 지지를 얻은 국제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 어린이들의 삶과 인권실태는 많이 달라졌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으며, 사회복지서비스 면에서도 큰 개선이 있었다. 건강하게 살아남을 권리나 교육받을 권리,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등 협약이 명시한 기본적인 권리는 이제 대부분의 우리 어린이들에게 절실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협약에는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결정할 때는 어린이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조항과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아야 한다”는 조항도 명시되어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부모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아이의 인생에 있어 부모가 지원해 주어야 할 몫이 있다면 스스로 결정하도록 남겨줄 몫도 있다. 아이의 말과 결정이 미덥지 못하겠지만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자. 의견이 맞지 않아도 때로는 아이의 의견에 따라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의 소신에 따라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 스무 살이 되도록 사소한 일 하나 혼자 해결 못하는 몸만 커다란 어린아이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지구촌 한편에는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마음으로 간절히 외치지만 그들의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고, 곁에는 들어줄 사람조차 없다. 국제사회는 가난과 질병으로 매년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소리 없이 죽어간다”고 표현한다. 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언론이나 국제사회의 이목조차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하루종일 노동을 하기도 하고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은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 커져간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북부 바코리 지방에서 채소 행상을 하는 열 두 살 소녀 자밀라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엄마가 돈을 벌라고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어 다시 학교에 가려고 했지만 자밀라는 4년이 넘도록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는 절박하게 소망을 이야기한다. 학교에 보내 주세요!

수많은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그 외침 속에는 부모에게 소망을 전하려는 내 아이도 있고, 죽음의 문턱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최빈국의 아이들도 있다. 모든 어린이가 행복해야 하는 오늘, 오래 전 소말리아 난민촌에서 만났던 한 아기의 미소가 떠오른다. 굶주림으로 매일 어린 생명이 죽어나가던 그 곳에서 영양실조로 곧 숨을 거둘 것 같았던 야윈 아기는 내 품에 안기자 눈을 반짝 뜨고 기적처럼 웃어 주었었다. 그 때 아기는 나에게 뭔가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나는 꼭 들었던 것만 같다.

안성기/영화배우,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친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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