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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지혜

미소띠움 2009. 12. 1. 13:37


로마제국이 몰락하고 난 다음부터 서유럽 국가들이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를 식민지로 삼는 1860년대까지 거의 1천년간 지중해는 해적의 바다가 되었군요.
시오노 나나미의 최근작을 통해서 집에 있는 여러 대의
해적선과 기독교 국가들의 갤리선(레고로 만든 작품)의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줄을 그을 만한 부분은 별로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발견해 낸 금맥을 보세요.

#1. 서기 1000년 이전에 살았던 지중해 서부의 시민들은
해적에게 납치되어 평생을 이슬람교도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자위책을 강구해야 했지만,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자위책이란 이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 정도는 바다를 널리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골라
망루(이탈리아어로 '토레 사라체노')를 세우고 해적선의 습격을 한시라도
빨리 발견하여 주민들에게 달아날 시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 것뿐이었다.

#2. 평화는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가 평화를 어지럽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언명하고 실행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현실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였다.

#3. 로마제국은 광역경제권이었다.
중세는 그것이 붕괴된 뒤에 찾아온 시대니까 협역경제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로마제국과 중세의 차이는 물산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시대와
유통이 멈춰버린 시대의 차이이기도 했다.

#4. 인간이란 좋든 나쁘든 현실적인 것보다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것에
더 가슴이 뜨거워지는 법이다. 가슴이 더 뛰는 것이다.
중세인의 신앙심이 강했기 때문에 십자군은 일어났다. 하지만 그 신앙심이 향하는 곳은 성지여야 했다.
성지 탈환을 목표로 내걸었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된 대중운동이 되었던 것이다.
해적에게 납치당한 불행한 사람들을 탈환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을 경우,
일시적으로는 십자군이었지만 연속적인 십자군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1천년 동안이나 계속된 지중해의 해적이라는 현상이
유럽역사에서 별로 중요시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5. 외교에서는 오른손으로 때려놓고 왼손을 내비는 짓을 자주 한다.
손을 내밀 정도라면 때리지 않아도 좋았을 것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은
선의를 가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외교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때리지 않아도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하지만 맞아야 비로소 승낙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6. 이 시대 사람이었던 마키아벨리는 증오를 받기는 할망정 경멸만은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에서는 사랑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쪽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쉽게 버릴 수 있지만, 두려워하고 있는
상대한테서는 쉽사리 떠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를 다루는 외교에서는
얕보이거나 경멸당하는 것은 실질적인 손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절대로 피해야 하는 중대사였다.

#7. 인간이란 남과 싸워서 이겨야만 가슴이 후련해지는 동물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인간을 통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도자,
특히 자신의 치세를 이제 막 시작해야 하는 지도자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무언가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수 있으면 국민은 좋은 징조라고 느끼고,
어려움에 부닥쳐도 이 사람이라면 따라가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반대로 시작부터 비틀거리면 국민이 의기소침해지기 때문에, 그후의 통치가 몇 배나 어려워진다.
술탄 술레이만이 즉위하자마자 단호한 결의로 로도스 섬 공략에 임한 것도 당연하다.

#8. 에스퍄냐를 증오한 나머지 티치아노(르네상스기의 최고 초상화가)가 그린 초상화도 남기지 않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만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편안히 쉴 곳을
마련해줌으로써 문화를 애호하는 군주로 이름을 남기고 싶었겠지만,
화룡정점을 빠뜨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티치아노가 그린 '카를로스'는 죽은 뒤에도 마드리드만이 아니라 각지의 미술관에 지금도
'계속 살아 있지만', 프랑수아 1세는 그런 형태로 계속 살아남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권력은 그것을 가진 자가 죽으면 끝나지만, 진정한 예술은 영원한 생명을 갖는다.

-출처: 시오노 나나미,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 하)>, 한길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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